음악/연주곡

혼을 흔드는 소리 께냐(케나quena)

금빛여정 2010. 6. 16. 15:43

 

 




 곡명 : Fire of Land, 악기 : 께냐.

혼을 흔드는 소리 께냐(케나quena)

리마에 스페인의 영광이 있다면, 3,500m 고원에 위치한 잉카제국의 옛 수도 쿠스코에는 사라진 잉카의 혼이 있다. 쿠스코에 도착한 여행자는 시내 어디서든 산등성이에 'VIVA el PERU!(페루만세!)'라는 글귀를 만나게 된다. 고비구비 산을 넘어 쿠스코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나 정든 쿠스코를 떠날 때 누구나 한 번쯤 음미하게 되는 글귀, 이 한 줄의 글귀는 세월에 묻힌 한때 안데스 산맥을 따라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번성했던 잉카제국의 영화를 보는 듯 새롭다. 남미에 발을 들여놓은 여행자라면 반드시 거쳐 가는 도시, 유럽풍의 건물과 잉카건축물들이 광장과 좁은 골목을 따라 늘어서있는 곳, 바로 그 쿠스코를 벗어나 6,000m 급 고산으로 둘러싸인 잉카제국의 중추를 이룬 성스런 계곡(우루밤바 계곡)을 순례하던 길이었다.

해마다 태양의 축제(Inti Raymi)가 열린다는 삭사이와망(Sacsayhuamang)을 둘러본 후 한참을 달려 차는 산 중턱에 있는 피사크 유적입구에 나를 부려놓았다. 기사는 천천히 둘러보고 아래 주차장까지 내려오는데 2시간을 주었다. 외길이라 사람들을 따라 가면 차례대로 제단, 태양의 신전, 무덤, 마을광장, 집터, 계단식논 등을 둘러볼 수 있다고 했다.

높은 산 봉오리로 피어나는 구름이 얼마나 크고 빠르게 움직이는지, 나는 대형스크린 아이맥스 영화관 안에 홀로 있는 듯했다. 출발점에서 한참 위로 오르고 있을 때 아련히 떠다니는 피리소리를 들었다. 나는 꿈만 같아 귀를 의심했지만 꿈은 정녕 아니었다. 사방으로 높은 안데스봉우리들이 평풍처럼 펼쳐져있는 아스라한 언덕 아래 붉은 망토를 걸친 한 남자가 피리를 불고 있었다. 분명 피리소리가 들리고 사람의 모습도 보이는데 모두지 현실 같지 않는 현상, 바람 때문인지, 약한 청력 때문인지, 피리소리는 여행자의 애간장을 녹이듯 이어지다가 끊어지고 다시 이어졌다. 저 피리소리! 나는 소리에 홀려 걸음을 멈추었다. 그 남자에게 다가가기엔 나는 너무 멀리 와있었고, 궁금한 마음에 카메라를 당겨 보았지만 표정을 읽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피리소리가 확연한 것도 아니었다. 피리소리는 한동안 바람을 따라 내 마음을 고무줄처럼 끌어당겼다. 조금은 귀에 익은 듯했으나 매우 생경한 소리, 그리고 처음 듣는 곡, 천상의 소리라는 바로 그 소리 께냐(케나)였다. 이 여행에서 바라던 것 중 하나가 카페나 도심의 거리가 아니라 깊은 안데스에서 바로 저 피리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었던가.

안데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대중적이기도 한 전통 악기, 께냐소리를 드디어 이 산정 유적지에서 듣게 되다니,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잉카후예의 연주를 경청했다. 께냐소리는 하늘을 찌르는 봉우리와 그 봉우리를 넘나드는 바람과 천상의 하모니를 이루며 깊은 계곡을 뛰어다녔다. 청아 하면서 절절하고, 너무나 몽환적인 소리, 부푸러기처럼, 깃털처럼 가벼워 구슬픈 소리에 날개가 달린 듯 나는 숨이 턱 막혔다. 그때 아스라한 바위절벽을 차고 오르는 한 마리 콘도르, 어떤 경우라도 그보다 극적일 수는 없었다.  

그때 조용히 내 마음을 두드리는 노래 ‘바람 속의 먼지(Dust In The Wind)’ 그 뭉클한 노랫말.....
“잠시 눈을 감네. 그 순간마저 가 버리고 모든 꿈들은 눈앞에서 그저 호기심으로 사라져. 바람속의 먼지처럼 그 모두 바람속의 먼지일 뿐. 늘 같은 이야기. 망망대해의 물 한 방울일 뿐. 우리가 하는 일들은 모두 흩어져 무덤으로 가. 우린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지만... 바람속의 먼지. 우린 모두 바람속의 먼지 같은 존재인 걸. 집착하지 마.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땅과 하늘 외에는 사라져 버려. 지상의 모든 것을 다 준다 해도, 시간은 살 수 없어. 우린 모두 바람속의 먼지. 모든 것도 바람속의 먼지일 뿐.”

모든 사물은 지속적인 관심과 의미를 부여할 때만이 자신의 것으로 재탄생되듯이 께냐소리도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의 넓적다리뼈를 다듬어 만들었다는 잉카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슬프디 슬픈 전설을 몰랐어도 그토록 절절했을까. 영혼을 울린다는 것, 혼을 부르고 혼을 위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오싹 소름이 돋는 예리한 감동으로 나는 정신이 없었다. 내 몸이 멀미가 날만큼 아스라한 벼랑 위에 있다는 것도 까마득히 잊은 채, 지금 무슨 재주로 몇 줄의 말이나 글로 그날의 께냐소리를 전달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내겐 그런 재주가 없다.  

지난해 우연한 기회에 나는 안데스 악기 팬플루트와 께냐로 연주되는 음악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남미여행을 계획하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남미를 유랑하는 동안 안데스 산정에서, 오래된 잉카의 도심 광장에서, 골목에서, 마을을 들고나는 오솔길에서, 카페에서, 여러 번 팬플루트과 께냐연주를 들었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들을 때마다 감동이고 들을 때마다 새로웠다. 초원에서 만난 양몰이 소년들이 장난감 삼아 들고 다니며 부는 설익은 소리도 좋았고, 평생 노동으로 손발에 지문 하나 없는 70대 노인의 담백한 연주도 좋았으나, 피사크 유적지에서 만난 께냐소리는 아무래도 좀 달랐다. 내가 상상했던 그 배경과 소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께냐(케나quena)

「잉카의 옛 수도 쿠스코의 어느 늦은 오후, 한 소녀를 짝사랑하던 청년이 그녀의 앞을 가로 막고 사랑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보세요. 저를 막지마세요. 저 소리 나는 곳에 나는 가야해요. 저 언덕 너머에서 들려오는 피리소리가 나를 부르고 있어요. 길을 막지 마세요. 제발, 사랑스러운 저 소리가 내 마음으로 하여금 그의 아내가 되라하니 가지 않을 수 없어요."」

께냐는 누가 들어도 사랑의 감정이 솟아날 만큼 환상적이고 신비스러운 음색을 지니고 있다 하여 누구라도 이 소리를 들으면 감동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전해진 이야기 한 토막이다. 자연에서 소재를 얻고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많아도 같은 소리가 없다는 것도 께냐만의 매력일 것이다.

보통 안데스피리라고 부르는 이 악기는 애조 띤 소리를 내며, 흔히 밤부(bamboo.대나무)나 마데라(madera.나무), 그리고 동물의 뼈로 만들어왔다. 전설에 의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의 넓적다리뼈를 다듬어 만들었다는 께냐(quena). 그래서인지 나지막하고 애절한 음색이 사람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잉카음악에서 께냐와 팬플루트는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께냐소리가 팬플루트가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인데, 특히 악기 중 가장 자연의 소리에 가깝다는 고운 음색은 누가 들어도 감동스럽다. 또한 안데스음악을 사랑한 잉카인들은 꾸준히 께냐소리의 폭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더욱 크거나 작은 형태의 악기를 만들어 왔는데, 보통 작은 것을「사쿠이라, 큰 것은「센카 텐카나」라고 부르며 크기와 소리가 매우 다양하다.

잉카유적과 함께 감춰졌던 잉카음악이 70년대 초부터 프랑스의 몇몇 뜻있는 아티스트들에 의해 재조명 되어 계승 발전된 점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 결과 유명한 인디오 앙상블이 탄생되었는데, 이들은 안데스의 민속악기의 주류를 이루는 께냐(quena.피리), 안따라(팬플루트), 봄보(북), 차랑고(아르마지로라는 작은 동물의 등껍질을 울림통으로 사용한 소형기타), 착차스(Chajchas, 라마, 양, 혹은 말린 열매 껍질 등을 실에 꿰어 흔들 때마다 착착 소리가 난다), 삼뽀냐(두 줄 혹은 세 줄로 된 팬플루트), 따르까. 시꾸 등의 악기로 구성되어 있다.

한때 스페인의 박해가 극에 달했던 때, 안데스 어디서나 울려 퍼지는 원주민들의 약기소리를 '악마를 부르는 소리'라 하여 닥치는 대로 빼앗아 불태우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는데, 그런 박해 속에서도 순수한 안데스음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들 악기야말로 대제국을 빼앗긴 아픈 역사와 그들의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혼이 담겨있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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